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실천적 이유가 있다. 즉, 이성과 감정은 대립하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결을 활용하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본 성인(聖人)들이 있다. 이들은 흔히 ‘감정 수양형 성인’이라 불린다.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수양과 습관화를 통해 감정은 길러지고 훈련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. 그러나 토마슨 교수의 성역 없는 질문은 계속된다. ‘감정을 길들인다는 게 실제로 가능한가?’, ’설령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한가?‘. 오늘은 이 질문들을 바탕으로 감정 수양이라는 오래된 이상이 지닌 의미와 한계를 재검토한다.